랭킹



히틀러, 우리가 몰랐던 열 가지 이야기

작성일 : 2017-08-23 15:16 수정일 : 2017-08-25 19:51 작성자 : 김샛별 (rlato7896@naver.com)

히틀러, 우리가 몰랐던 열 가지 이야기

 

 

 

세기의 악마로 일컬어지는 독일 나치당의 수장 아돌프 히틀러
국적, 소년 히틀러의 꿈, 그리고 첫사랑 등
세상이 지우고 싶은 세계 역사의 오점, 히틀러.
그에 대해 우리가 잘 몰랐던 크고 작은 사실들 열 가지를 파헤쳐보자.

 

 

 

1. 히틀러는 독일인이 아니다?

 

독일의 나치당을 전두지휘하며 끔찍한 전쟁과 침략의 역사를 자행한 히틀러.
독일 역사에 수치를 안긴 히틀러가 사실은 독일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히틀러는 독일의 옆나라, '오스트리아'인 이며 24살이던 1913년에 독일로 넘어갔다.

과거를 반성하고 안타까워하는 독일인처럼 오스트리아인들도 히틀러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역사에 대해서 수치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2. 히틀러의 꿈은 목사였다?

 

유대인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하는 등 악마가 따로없던 히틀러의 어린 시절 꿈은 목사였다.

강물에 빠져 죽을 뻔한 히틀러는 한 목사에 의해 목숨을 건졌고

그후로부터 목사가 되는 것을 꿈꿨다고 한다. 목사가 되지 못했던 탓일까?

히틀러는 스스로 예수라고 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자신을 예수로 인정해주지 않아

목사 기독교 탄압을 주도했다고 한다.

 

 

 

 

3. 히틀러의 첫사랑은 유대인이었다?

 

10대의 히틀러가 사랑에 빠진 소녀가 있었으니 바로 스테파니 라바치라는

유대인 소녀였다.
첫눈에 보고 사랑에 빠져 구애를 했으나 자신감이 없던 소년시절의 히틀러는

스테파니가 거절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그녀를 납치까지 하려고 했다고 한다.

훗날 스테파니는 오스트리아 군인과 결혼을 했다.

이름 때문에 스테파니를 유대인으로 알고 있던 히틀러,
히틀러가 유대인에 대한 반감을 품은 계기라고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밝혀진 사실은

스테파니는 전혀 유대인 혈통이 아니였다고 한다.

 

 

 

 

 

 

4. 히틀러는 병역 기피자?

 

 

1913년 5월, 24세의 히틀러는 비엔나를 떠나 독일로 떠난다.
그 이유로 알려진 것이 당시 유럽을 통치하던 오스트리아에서는
군인이 되면 전장에 나가 싸워야만 했는데 히틀러는 그걸 원하지 않았고
그를 피하는 방법으로 독일행을 선택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약 반년 뒤 히틀러는 뮌헨의 자택에서 병역 기피 혐의로 체포되어
신체검사를 받으러 돌아오라는 통지를 받게 되었고 결국 군대에 합류해
1차대전에 참전했다.

 

 

 

 

5. 히틀러는 노벨 평화상을 받을 뻔했다?

 

1939년 7월 히틀러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그 이유인즉슨, 더이상 다른 나라에 해를 입히지 않고

독일의 평화를 지키겠다고 선언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야망을 버리고 평화를 선택했으니 상을 줘야 마땅하다는

어처구니 없는 추천인의 사유였다.

 

 

 

 

6. 동물애호가 히틀러, 개를 죽이다?

 

뜻밖의 동물애호가로 알려진 히틀러이지만
너무나 사랑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자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가 키우던 강아지에게 청산가리를 먹여 죽이고
다섯 마리의 다른 애완견도 총으로 쏴 죽여 어머니와 같이 묻었다고 한다.

 

 

 

7. 미국 정부의 계략?

 

세계 2차대전 당시, 히틀러의 세력이 너무나 기고만장해

세태를 전환하고자 했던

미국정부는 히틀러의 음식에 몰래 여성호르몬을 투여했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히틀러의 공격적인 성향을 바꾸려 했으나

결국 그 계획은 실패에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8. 사실 폭스바겐의 아버지는 히틀러?

 

독일어로 폭스바겐은  Volk(국민)s+Wagen(차) = Volkswagen  

즉, 국민자동차를 뜻한다.
1937년 나치당 수장 히틀러는 국민자동차 생산 프로젝트를 실시한다
어른 두 명과 아이 셋이 함께 타 100km로 달릴 수 있으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의 자동차를 만들라고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그 가격에 차를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하게 된다.

결국 나치가 장악한 '독일 노동 전선'이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는데

그 회사가 바로 폭스바겐의 모태다.

 

 

 

9. 미술학도 히틀러?

 

오스트리아 군입대를 피해 독일에 가서 살았던 히틀러의 직업은 화가였다.
그림을 그리고 팔아 먹고 살았던 20대 초반의 생활과 달리
1900년대 초반 비엔나에는 이미 수많은 예술가들로 포화상태를 이뤘다고 한다.

히틀러는 거기서 언제나 문전박대 당하는 미술학도로써 무능력자였다고.

실제로 비엔나 미술대학에 입학 지원을 수차례 했으나 매번 낙방했다고 한다.

 

 

 

 

10. 히틀러는 변태였다?

 

 

히틀러와 연인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진 네 명의 여성은
전부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원인은 한쪽 고환만 있었던 히틀러의 당시 성적 콤플렉스 때문이다.

여성들과의 성관계 문제로 인해 점점 그는 오럴이나 애널관계, 나아가

기괴한 성적 취향에 빠지게 됐다고 전해진다.

 

 

 

수많은 사건을 뒤로하고 아돌프 히틀러는 1945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가한 데에 비해 참으로 쉬운 죽음이었다
그로 인한 상처로 현재도 앓고 있는 독일과 유럽 역사.

앞으로는 이런 독재자가 다시는 탄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javascript:OnColorPicker(document.frmWrite.color,'background-co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