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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화보 찍었다가 인생 폭망한 여자 연예인 TOP3

작성일 : 2019-11-04 20:40 작성자 : 세이 (wognswotjr@gmail.com)

다행히도 시대가 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과거만 해도 여자 연예인들을 성적 대상화로 소비하는 분위기가 만연했습니다.

그래서 노출 화보로 수익을 올리는 연예인도 많았는데요.

잘 찍으면 이미지 변신은 물론 수익 창출에도 도움되는 과감한 화보.
그러나 딱 한 번 찍은 노출 화보로 인생 폭망의 기로에 놓인 여자 연예인도 있습니다.


 


김완선

시대를 앞서간 세련된 스타일과 대적할 데 없는 출중한 실력으로
1986년 데뷔와 동시에 신드롬적인 인기를 구가한 가수 김완선.

'오늘 밤', '삐에로는 우릴보고 웃지' 등 대한민국 최고의 여가수
탄생시킨 히트곡만 여러 개였지만 활동 내내 극심한 돈문제에 시달렸다는데요.

 


이모이자 매니저였던 한백희가
당시 김완선이 거둬들이는 수익 모두 남편의 사업 자금으로 활용했고,

급기야 사업 자금을 대기 위해 김완선의 이름으로
여러 곳에서 대출을 받는가 하면 보증까지 선 게 원인이었죠.

아무것도 모른 채 가수 활동에만 전념하던 김완선은
단 한 번의 정산도 받지 못 한채 1998년이 되어서야 이모 한백희와 결별했지만,
활동 공백기가 생기면서 더 큰 경제적 빈곤에 시달렸다는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모가 투병 생활을 시작하며
병원비까지 마련해야 했던 김완선.

결국 큰 돈을 벌고자 당시 소속사와의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노출 화보를 감행했습니다.

인기가수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하지만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화보 촬영으로 5억을 지급받고 이후 판매 수익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 조건으로 촬영에 들어갔으나
아티스트 독단에 의해 결정된 화보 촬영에
소속사는 화보 서비스 게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

이와 더불어 전속 계약 조항을 어겼다며
3억여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했는데요.

 


뿐만 아니라 김완선이 괘씸하다는 이유로
당시 그녀가 거주 중이던 집과 저축 통장에 대해서도 가압류 신청을 냈습니다.

게다가 화보 제작사는 "김완선이 소속사와 마찰을 일으키는 바람에
수익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며 계약금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결국 김완선은 화보 회사를 상대로 계약금 지불 소송을 걸 수밖에 없었죠.

 


오랜 소송 싸움 끝에 제작사에 승소하여 잔여 계약금을 지급받고
화보 게시 금지 가처분도 기각되었지만,

이로 인해 원치 않던 공백기를 가져야 했고 이미지까지 훼손된 김완선은
더 큰 경제적 타격을 입어야 했습니다.


 


곽진영

지금 세대에겐 다소 낯선 이름의 배우 곽진영은
1992년 MBC 드라마 '아들과 딸'의 '종말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며
그해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 핫한 루키로 떠오른 바 있습니다.

그러나 종말이라는 캐릭터의 빛에 가려 매번 비슷비슷한 캐릭터만 연기해야 했고
곧 뜨거웠던 인기도 점차 시들해졌죠.

 


이에 곽진영은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자 성형수술을 감행했지만,
눈이 잘 감기지 않는 등 성형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고
육안으로 보기에도 부자연스러운 눈 모양으로 배우로서 큰 핸디캡을 얻게 됩니다.

결국 성형수술 후유증으로 술과 수면제를 가까이 하게 됐고,
급기야 대인기피증세에까지 시달려야 했던 곽진영.

 


한 토크쇼에 출연한 그는 "어쩌다 방송에 출연해도
카메라 감독님들이 눈이 왜그러냐고 묻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였다"
이제 배우 일도 못하게 될 거란 생각에 좌절감을 느꼈다고 전했는데요.

이후 의도치 않게 방송활동을 중단해야 했던 곽진영은
2004년 노출 화보집 출연 제의를 받고 오랜 시간 고민하다
생계 유지와 이미지 변신을 목적으로 승낙, 과감히 도전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앞선 김완선처럼 소송에 휘말린 것은 아니지만,
눈에 띌 만한 배우 활동 없이
파격 노출 화보로 모습을 드러낸 곽진영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차가웠죠.

당시를 회상하며 곽진영은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다시 노출 화보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것이
인생의 단추를 잘못 꿰게 된 원인인 것 같다"고 고백하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승연

1992년 미스코리아 참가를 계기로 연예계에 입문,
뛰어난 패션감각과 수려한 외모로 첫사랑, 사랑을 그대 품안에, 신데렐라 등
각종 인기 드라마 출연은 물론 진행 솜씨까지 뛰어나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제작된 토크쇼 MC까지 맡는 등 90년대 아이콘 스타로 군림했던 이승연.

그러나 운전면허를 불법으로 취득한 정황이 포착되는 등
여러 구설에 휘말리며 내리막을 걷게 됐고,
2004년 당시 여자 연예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노출 화보집 제작에 합류하게 됩니다.

 


90년대 초중반 역대급 인기를 누렸던 이승연이
노출 화보를 찍는다는 소식에 대중들의 관심이 이어졌고,
이승연 역시 큰 돈을 벌 수 있는 화보 출연을 마다하지 않고
언론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홍보하기에 이르렀죠.

 


그러나 화보의 콘셉트가 문제였습니다.

충격적이게도 국민들의 역사적 아픔이 서려있는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삼은 것인데요.

이승연은 화보집에서 욱일기와 일본군을 배경으로 한복을 입은 채
아련한 표정을 짓는 등 평생의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성 상품화하는 모습으로 전국민적인 공분을 샀습니다.

 


국민들의 비난과 분노는 날이 갈수록 격화됐고
결국 화보 제작사 대표가 삭발하고 필름 폐기를 언론 앞에서 공개하는 등 파장이 이어졌고
화보의 주인공인 이승연 역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아
무릎을 꿇고 눈물의 사과를 했지만 일종의 퍼포먼스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이후에는 화보집 출판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제작사가
뒤로는 일본에서 몰래 출판하려던 것이 발각돼 또 한 번 논란이 이어진 바 있습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거드린 이승연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수직 하강했고,
이후 2004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배우들의 단골 코스인
예술 영화 출연으로 복귀의 문을 두드렸지만 대중의 반응은 차갑다 못해 싸늘했습니다.

 



특정한 이미지로 소비되는 연예인이라는 직업.

이미지를 활용해 CF를 찍고, 작품을 촬영하며 일반인들이 평생을 일해도 벌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돈을 버는 것이 직업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만,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평생의 외면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연예계 활동에 있어 신중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