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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도 하기전에 재혼부터 한 이중결혼 연예인 TOP3

작성일 : 2019-12-08 12:00 작성자 : 세이 (wognswotjr@gmail.com)

이미 결혼한 유부남, 유부녀의 신분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사회적 지탄을 감행하고 현 배우자를 위해서라도 이혼을 결정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이혼에도 절차라는 게 있는데, 그 과정이 너무 지난한 탓인지
이혼 과정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새 사람과 재혼부터 한 간 큰 연예인들이 있다는데요.

오늘은 이혼도 하기 전에 재혼한, 성격 급한 이중결혼 연예인 TOP3를 알아보겠습니다.


 


<윤복희>

한국에서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 최초의 패셔니스타이자 시대를 앞서간 음악으로
60~7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가수이자 뮤지컬배우 윤복희.

1968년 스무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가수 겸 영화배우였던 동료 연예인 유주용과 결혼하였으나
곧 사이가 소원해지면서 1973년 구두로 이혼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요.

왜 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구두로 이혼에 합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주용과 갈라선 윤복희는 3년 후인 1976년 당대 최고의
남자 가수로 군림하던 남진과 결혼하며 큰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법적으로는 유주용과 결혼한 상태였기에
남진과는 결혼 반지만 받은 사실혼 관계였죠.

2019년인 지금 들어도 놀라운데 70년대 시대상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스캔들이었다는데요.

그러나 윤복희는 남진과의 결혼에도 실패, 3년만에 헤어졌고 수십년이 지난 2011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당시 알리지 못한 결혼과 이혼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 충격을 자아냈습니다

 


윤복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남편 유주용 뿐인데
남진과의 스캔들로 나약해진 남편에게 서운했고 홧김에 이혼했다"고 전하며
"남편 보라고 나 좋다며 고백한 남진의 순진성을 이용했다"고 털어놓은 것이죠.

즉, 남진을 사랑해서 한 결혼이 아닌
남편을 자극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었는데요

문제는 윤복희와의 이혼으로 남진이 온갖 루머에 시달렸다는 점입니다

 


당시 남진은 윤복희를 감금 및 폭행했고, 결혼 파탄의 원인 제공자라는
근거 없는 비난을 받아 인기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바 있는데요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윤복희를 위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모든 비난을 뒤집어 쓴 남진.

30여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입을 연 윤복희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과
상대방이 직접 입을 열기까지 기다린 남진에게 대인배라는 엇갈린 반응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유퉁>

연예계 결혼, 이혼 이야기에 늘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유퉁.

6명의 여성과 8번의 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유퉁은 결혼, 이혼, 재혼에 이어 중혼이라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바 있습니다

2004년 KBS '도전 지구탐험대' 촬영차 떠난 몽골에서 만난
29살 연하 여성과 일곱 번째 결혼을 올린 유퉁은 이후 딸까지 출산하며 마침내 정착하나 싶었지만,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결혼 5년차에 이혼했습니다.

당시 아이가 상처받을 것이 염려돼 법적 이혼을 보류했다는데요.

 


그러던 중 여덟 번째 아내인 33살 연하의 또다른 몽골 여성을 만나
2017년 2월 결혼식을 올린 유퉁.

그러나 전부인과 법적 이혼 절차를 밟지 않았기에
여덟 번째 부인과 유퉁은 중혼적 사실혼 관계만 유지해야 했습니다.

2017년 한 토크쇼에 출연한 유퉁은 "전 부인이 잠적한 상태다.
한국에 와서 가정법원에 가면 끝나는데 소식이 두절돼 이혼을 못하고 있다"라며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는데요.

 


결국 전부인과 이혼도 하지 못한 채 새 부인과 사실혼 관계 하에서
딸도 낳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유퉁.

하지만 유퉁은 또 '유퉁' 해버렸는데요

아내와 딸은 몽골에서, 자신은 몽골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던 중
아내가 몽골 현지인 남성을 만나 결혼하면서
여덟번째 부인과도 사실혼 관계를 청산, 또 다시 이혼했다고 하네요

유퉁은 "현지의 전원 주택과 아파트는 위자료로 줄 생각"이라며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과연 상처를 딛고 아홉 번째 결혼을 하게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이봉조>

요즘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의 이봉조는 잘생긴 외모와 천재적인 음악성으로
60~7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스타 작곡자 중 한 명인데요

정훈희와 현미를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으로 스타로 만들었고,
앞서 소개한 윤복희도 가수로 데뷔시킨, 지금으로 치면 천재 프로듀서라고 볼 수 있죠

1956년 이화여대 출신의 엘리트 여성과 결혼한 그는
슬하에 딸 둘까지 낳고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이어오다
자신이 키운 가수 중 한 명인 현미와 몰래 열애를 시작,
급기야 동거까지 하면서 현미와의 사이에서 둘째 아들까지 낳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 한 방송에 출연해 당시를 회상한 현미는
"당연히 총각이라 생각했고 아이 둘 딸린 유부남이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전했는데요.

혼전에 임신해 결혼 날짜까지 잡았는데 이봉조가 자꾸 결혼을 미루는 게 수상하던 찰나,
임신 7개월이 되었을 때 이봉조의 아내가 찾아와 유부남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큰 충격에 빠진 현미에게 이봉조는 이혼 서류를 가져왔고,
전 부인과의 결혼 생활을 청산한 것으로 믿은 현미는
이봉조와의 사이에서 둘째 아들까지 낳으며 결혼생활을 이어갔지만
알고보니 이혼 서류는 가짜였는데요

 


두집살림을 하며 본처와의 사이에서 막내딸까지 출산한 이봉조.
현미와 이봉조, 이봉조의 아내까지
세 사람 모두가 알게된 이 두집살림은 한동안 계속되었다고 하죠

하지만 1974년 이봉조가 가수 김추자와의 불륜에 연루되며
현미는 '별거' 를 선언을 하게되는데요.

정식으로 결혼을 한 적도 없기에 이혼이 아닌 '별거' 라고 표현했지만
1987년 이봉조가 사망할때까지 이 별거는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법적 제도 장치라고 할 수 있는 결혼.
아무리 자유로운 연애, 사랑도 좋지만 사회적 규범은 지키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